제8회 구리시청소년종합예술제 산문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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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2일 0시 0분 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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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구리시청소년종합예술제 산문부문 입상작
산문 고등부 최우수
나의 가장 소중한 30분
토평고등학교 2-4 이정우
나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고등학생이다. 이른 아침 햇살이 비추는 길을 걸어 나가서 야자와 시험의 압박에 찌들었다가 왕자님도 없는 학원이라는 암울한 무도회장에서 밤 12시 종이 땡 치면 피곤함으로 묵직해진 어깨를 늘어뜨리며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비운의 신데렐라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입시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고 따라서 나의 부모님과 두 여동생이랑 얼굴을 맞대고 보내는 시간이 매우 적다. 한마다로 말해서 가족이란건 내 힘든 수험생 시절에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었단 소리다.
그러나 몇 달 전 나는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였음을 깨달았다.
때는 지난 4월 말이었다. 2학년을 올라와서 보는 첫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었다.
항상 수학 시험을 망쳐서 이번 시험부터는 무조건 좋은 점수를 사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꽉 잡혀있었다. 중간고사가 3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해야 할 공부는 밀려있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극히 초조해져 있었다.
그날따라 하루가 힘겨웠던 것 같다.
학교에 올 때 운동화가 다 마르지 않았다는 소리에 엄마한테 괜한 짜증을 내고 온터라 마음은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사계절 구분 없이 시험기간만 되면 찾아오는 감기는 내 몸을 마구 괴롭혀 댔다.
머리는 무겁고 기분은 안 좋고 만사가 다 귀찮고 짜증이 났다. 그날 본 수학 수행평가도 실수로 몇 문제를 틀리고 서로 예민한 때라 친구들과의 사이도 별로 교감이 오가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속도 별로 좋지 않았다. 웃음이 메마른지 오래였다. 오로지. 교과내용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기계적으로 집어놓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마지막 일과인 학원을 끝마치고 나왔을 때는 정말 토하고 싶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신발을 질질 끌며 사람들이 별로 없는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엄마”, “가방 이리 내.” 엄마였다. 별로 반가운 기색도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서 다가온 엄마는 짧게 한마디를 하고 내 무거운 가방을 받아 맸다.
“배 안 고프냐?” “조금” 사실 배는 무척 고팠지만 도저히 뭔가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말에 엄마는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였다.
그걸 받아들고 막상 한모금을 마시고 나니 괜히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그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고등학교 입학전의 실실 잘 웃으며 재잘재잘 떠들어 대던 수다쟁이 딸과 조금은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엄마의 모습으로 말이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내가 말하는 것에만 조금씩 대답하며 질문을 했고 나는 그 옆에서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계속 쏟아냈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매일처럼 내가 올때까지자지 않고 소파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짤막한 인사말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위로 바로 쓰러져버리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아빠한테도 재잘재잘 10분을 수다를 떨었다.
시험 따위, 여전히 날 초조하게는 했지만 더 이상 날 짓누르고 웃음을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자는 동생들의 방에 들어가 얼굴을 한번씩 봐주고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을 때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등교할 때 제일 일찍 나가는 나를 위해 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는 엄마와 눈 마주치는 시간 10분. 공부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 왔을때 역시 회사에서 지친 몸을 가누며 소파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아빠한테 수다떠는 시간 10분. 해가 떠 있을때는 얼굴을 보기 힘든 두 동생방에 들어가 쌕쌕 잠든 얼굴들을 봐 주는 시간 각각 5분. 힘든 24시간 속에 이 30분의 시간이 끼어있었기에 내가 여태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이 30분의 시간은 신데렐라가 당당히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게 요정이 드레스와 구두를 만들어준 마법의 시간처럼 나에게도 힘든 공부와 맞설 수 있게 가족이란 요정들이 걸어주는 강해지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나의 하루 중 가장 소중한 30분이 나를 웃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