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구리시청소년종합예술제 산문부문 수상작품
- 작성자
- 수련팀
- 등록일자
- 2008년 6월 25일 0시 0분 0초
- 조회
- 2,895
제9회 구리시청소년종합예술제
■ 산문 초등부 최우수작 - 동구초등학교 6학년 손수빈 (작품명 : 밥짓는 아버지)
솔~솔~맛있는 냄새가 언니와 나의 공부방까지 풍겨 들어온다.
“우와! 이게 무슨 냄새야? 산해진미 안 부러울 냄새네?”
입맛이 까다로운 언니가 방실 방실 웃으며, 읽던 책을 내려놓고, 부엌쪽으로 다가갔다. 나도, 그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얼른 부엌으로 냉큼 달려갔다. 그 곳에는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하시고 오신 아버지께서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붙잡곤,
“아버지, 아버지, 이게 무슨 냄새에요? 냄세가 예술이에요~! 히힛”
말괄량이 내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내 볼을 가볍게 당기시며 웃으셨다. 드디어, 저녁이 완성되고, 주무시던 어머니께서 발딱 일어나시더니, 우와~하시며 감탄을 그치지 못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미소를 입 안에 머금으시며, 어서 먹어보라고 손짓하셨다. 오늘 밥상에 놓여 있는 저녁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수저를 들으시며, 먼저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서 드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햐~ 역시 이 맛이야! 역시 우리 남편 요리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내가 일본에 갔을 때, 당신 계란찜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라. 일본 계란찜은 물컹물컹한 게 맛이 하나도 없더라?”
일본에 갔다왔었던 언니와 나는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맛있나며 벙글벙글 웃으셨다. 엄마는 당연하다며, 연신 감탄하셨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새벽 5시에 회사에 가셔서, 다음날 아침 8시 15분에 집에 들어오신다. 이렇게 힘이 드시면서도 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가족을 위하여 힘쓰신다. 엄마를 위해 엄마가 다니시는 회사에 차를 태워 대려다주시고, 언니와 나를 위해 학원에 대려다 주시기도 하고, 언니와 나를 돌봐주시고, 잘 놀아주신다. 아버지께서도 바쁘신데, 이렇게 가족을 위해 힘쓰시는 모습을 보면, 조금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행복해보인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게 ‘아버지’하면 어떤 게 떠오르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천사, 가족의 보디가드, 키다리 아저씨라고. 왜냐하면 항상 가족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정말로 크게 느낀 적이 있다. 그 때는 바야흐로 2년전 으로 언니가 사소한 일로 남자아이들과 싸웠는데, 그 때 아빠께서 그 남자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혼을 냈던 기억이 있다. 남들이 들으면, 너무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는 것 아니냐며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약간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께서 그렇게 언니와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었다는 그런 따스한 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 어느 위인들보다도 더 존경한다. 그리고, 또 언제 아버지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냐면, 바로 나의 취미에 적극적으로 밀어주셨을 때 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요리하기, 책읽기, 그림그리기, 박스로 생활용품만들기가 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시며, 요리도 가르쳐주시고, 우리가 어렸을 적 부터 품 안에 안고는, 책도 읽어주셨다. 그리고,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것이 종을 것인지 일러주시기도 하시고, 박스로 내가 무언가를 만들때, 어려운 과정이 있으면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나의 재능에 더 힘써주시는 아버지가 너무 감사했다. 나도 나중에 크면, 자식에게 그렇게 힘써주고, 가정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라는 분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훌륭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나는 설거지도 해드리고, 빨래도 해드리 겠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내게 산소같은 존재이시다. 즉, ‘내게 꼭 필요하신 분’이시다. 나는 몇번이고 아버지께 이런 말을 드리고 싶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 산문 초등부 우수작 - 부양초등학교 3학년 백호렬 (작품명 : 아버지는 천하장사)
가족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엔 가족은 사랑의 주머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둘도없는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 가족의 사랑의 주머니 중에서 최고인 아버지! 난 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최고 인것 같은 아버지 말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필요한 것을 아끔 없이 주신다. 자녀들도 부모님의 사랑 안에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날수 있다. 그렇게 키워 주시는 아버지는 나에게 이로움만 주는 황금닭 같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들이 늘 건강해진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들이 가족이라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용기와 기쁨과 행복 사랑으로 항상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너무나 최고 인것같다. 얼마전에 우리 아빠께서 심한 열감기가 났을때 심한 열이 나고 몸살이 났던적이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언제나 무쇠팔 천하장사 아빠가 아프실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빠가 아프 시다니…….
온 식구가 우울했다. 내 방에 웃고 있던 인형들도 시무룩해 보였다.
‘에이, 왜 병이 아빠한테 간 거야’ 아빠 몸 속에 있는 병균들을 싹 없애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 집에 가장이고 항상 소나무 처럼 우뚝 변함없이 아버지가 나에겐 큰 희망이다. 언제나 아프지 않고 무쇠팔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약한 곳이라곤 하나도 찾아 볼수 없는 무슨 일이든 번쩍 번쩍 용기있게 뒷걸음질 하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하는 멋진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 나는 하나 해 드릴수 있는 것은 힘이 더욱 솟아 나라고 팔다리 팍팍 주물러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 께서는 저번에 아프셨던 기운이 다시 힘차게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셨다. 이렇게 아버지는 늘 우리가족 옆에서 항상 웃으시며 힘차게 오늘도 열심히 천하장사의 힘을 길러 나갑니다. 저도 우리 아버지처럼 하나 밖에 없는 무쇠팔 천하장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단 하나뿐인 영원한 천하 장사 이시다. 그리고 다음에 천하장사 무쇠팔 아버지가 또 아프시더라도 우리 가족 힘의 사랑주머니를 꺼내어 먹고 나을수 있는 약이 되어야 겠다. 무쇠팔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불끈 불끈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 헤쳐 나가시고 폭풍우 비바람이 쳐도 지금처럼 꿋꿋이 지켜 주실거라 믿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항상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무쇠팔 천하장사의 힘을 이어 받아 어렵고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아버지 처럼 잘 이겨 나갈 수 있는 멋진 천하장사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 산문 초등부 장려작 - 구리초등학교 5학년 장유정 (작품명 : 우리 아빠)
우리 아빠도 내 친구들의 아빠처럼 평범하신 아빠다. 항상 감싸주시지도 않고 나에게 기쁜일은 함께 기뻐해주시고 내가 잘못하는 점이 있으면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고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도 해주신다. 하지만 우리가족만 알고 있는 아빠의 비밀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신사답고 멋지게 행동하시지만 집에 돌아오시면 180° 바뀌신다. 코딱지 파서 바닥에 흘리고 밥먹을 땐 입에다 다 묻히신다. 그리고 무척 까다로우시다. 특히 음식에…… 엄마가 소금을 조금만 적게 넣어도 “간이 안됐네…”라고 말씀하시고 많이 넣으면 “꼭 음식 못하는 사람이 짜게 음식을 해.”라고 말씀하신다. 또 예민하시다. 심지어는 아빠가 주무실 때 조금만 목소리를 높이면 깨어나신다. 그리고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시다. 예를들면 “식탁에 음식 흘린건 먹지마라. 밥먹을때 먼지내지마라. 바닥에 흘리지 마라.”등 음식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편할때도 있다. 또 우리 아빠는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하시는 것같이 행동하신다. 항상 내동생이랑만 놀아주시고 밥도 먹여주고 노래도 불러 주신다. 또 노래도 불러주신다. 그래서 나는 내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런 것 이라고 알면서도 샘이 날때가 많다. 이렇게 아빠의 빈틈도 있지만 나는 놀랄때도 있다. 이런경우이다. 우리 까칠한 아빠가 요즈음에는 유머감각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내동생은 아직 모르고 있는것 같지만 아빠가 드라마에 나오는 손창민 아저씨처럼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시는것 같다. 또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것이라고 주장하던 아빠가 요즈음은 부엌일도 많이도와주신다. 내가 제일 놀란건 이사할때 우리아빠가 작년에 다리뼈가 부러지셔서 무리하시면 아프시고 안돼는데 엄마보다 청소하시는걸 더 협조해주시고 짐푸는것도 열심히 협조해 주셔서 새삼 놀랐다. 예전에 항상 아빠는 남자는 여자에게 대접받아야하고 집안일에 손도 대지않아야 한다는 권위의식이 강했고 만약이러지 않을경우엔 남자의 권위는 떨어진다고 생각해하셨다. 하지만 나는 청소하시는 아빠를 보며 예전보다 지금이 아빠의 권위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우리엄마도 아빠와 결혼한 것에대해 절대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나도, 내 예쁜여동생도 지금의 아빠가 예전보다 더 편하고 좋다. 아빠에게 원하는 점이 있다면 지금보다 아빠가더 책임감있고 사랑을 더 잘 표현해주셨으면 좋겠다.
“아빠, 사랑해요!”
■ 산문 중등부 최우수작 - 교문중학교 2학년 윤희준 (작품명 : 나의 하늘 아버지)
아버지는 내게 하늘이다.
어머니에 대해서 글은 많이 써봤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글을 쓰려니 어머니와 다른 느낌을 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우리 아버지 역시 가족의 행복과 부양을 위해 항상 애쓰신다.
아버지의 나이도 올해로 50이다. 보통 친구들의 아버지들 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결혼도 늦으셨고 맞이인 나도 늦게 낳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고 가끔씩 엄하시고, 우리에게 빈틈없는 모습만 보여주셔서 그런지 나는 아버지가 늘 강한줄 만 알고 있었다. 어떤 생각, 어떤 일을 하는 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서글서글한 성격이시라 남이 부탁을 해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 주시고, 내 눈에 아버지가 대단한 존재로 느껴졌고 한없이 크고 커다란 존재로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는 가끔 엄하시긴 해도, 나에게는 모든 부탁을 들어줄 만큼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와는 보통 대화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아버지랑 대화도 잘 하고 고민거리도 쉽게 터 놓는 편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내 눈에 아버지가 점점 추슬러져 비치는 것이…
요새 아버지가 회사에서 많은 업무와, 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 보이시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다.
난 그런 것도 잘 모르고 아직 어린아이처럼 투정과 짜증만 내고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투정부리기 일쑤였다. 이러는 내 자신이 가끔 밉기도 하였다.
지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어깨 한번 제대로 주물러 드리지 못한 것 같아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커다랗고 커 보이던 등 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는지 작아 보인다. 지금도 한숨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죄송스럽기만 하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 저녁에는 회사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안마를 해드려야지.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까지 잘 해오셨고, 앞으로도 잘 해 나갈 꺼 라고 나는 믿는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식구를 위해 사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아버지 못지 않게 가족을 우선시 할 것이며, 지금은 학생의 본분을 지켜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아버지는 나에겐 어린시절이나 지금이나 하늘이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생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주 큰 힘이 되어 주는 파란 하늘! 그래서 늘 함께 해야하는 소중한 하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하늘일지 몰라도 내겐 매일 사랑으로 생활에 힘의 근원이 되어주는 커다란 공간인 하늘이다.
■ 산문 고등부 최우수작 - 토평고등학교 2학년 김슬기 (작품명 : 아버지)
나는 처음에 ‘아버지’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으로 써볼까도 생각했었지만, 구리시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참가한 만큼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아버지에 대해 쓰겠다.
나는 솔직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셨다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사실, 우리집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적이 별로없다.
아버지는 처음에 내겐 뜬구름처럼 다가왔다. 어렸을 때 부터 이런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아버지는 내 삶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의식속에 잠시 스쳐가는 존재였다.
엄마는 이런 내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리셨고 나는 엄마의 보살핌속에 자라났다. 중학생이 된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자 내 상황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마에게 대들며 물어보았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 이야기는 꺼리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게 오랫동안 해주지 못한 말들을 해주시기 시작하였다.
그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엄마의 힘들었던 그동안에 나날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진짜로 아버지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나는 앨범을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였다. 그리고 만나지 않던 친가쪽 친척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생각할때면 어렸을적에 난감한 일들이 떠오른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가정환경조사서와 등본을 걷는데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가장 먼저 있는 반면, 나는 엄마의 이름이 맨 먼저 있어 내기가 챙피했었던 경험도 있었고, 친구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할때면 나도 모르게 그 속에서 움츠러 들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친구들이 내가 아버지가 없는 상황을 알까봐 항상 노심초사 해야했다.
그런 생각의 끝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다. ‘아버지가 있었으면’하는 생각도 항상 들었고, 아버지가 없는 나마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목포의 한 산소에 갔는데, 여름방학 때 였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날씨가 무더워 짜증을 냈던일이 생각이 난다. 그 때만 생각하면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그리고 나의 철없던 행동을 후회한다. 그 이후론 아버지의 산소에 가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곳이 어디든 아버지는 나와 함게 하실거라고 믿는다.
요즘, 한창 대드는 동생을 볼때면 나는 조영히 방에 들어가 아버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엄마도 요즘 일이 바쁘셔서 동생과 나에게 신경을 잘쓰지 못하신다. 남들과 다르게 아버지가 안계시다보니, 나는 조금 철이 일찍들었다. 그래서 나는 때론 동생에게 아버지의 역할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4살, 동생은 돌도 지나지 않는 나이였지만, 동생도 나처럼 아버지를 많이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 남매는 그렇게 아버지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내게 사랑과 천국의 존재, 그리고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이제 나도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의 끝에서서 아버지를 돌아볼 수 있는 나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의 아버지는 살아계시지 않아도 불러볼 수 없어도… 내게는 한없이 소중한 분이시다. 사실, 아버지란 주제를 받는 친구들은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글 속에 담아내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래도 나의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19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의 인생을 보람차게, 후회없이 살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든든한 후원자, 내 아버지가 나를 응원해 주시기 때문이다.
■ 산문 고등부 우수작 - 토평고등학교 1학년 김보라 (작품명 :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가지 뜻이 나온다. 첫번째는 남자인 어버이 즉 부친이라는 말이고 두번째는 자녀를 둔 남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일컫는 말. 마지막 세번째는 삼위일체에서 제일 위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을 친근히 부르는 말이라는 것. 나는 이 세가지 뜻 중에서 마지막 세번째 뜻이 가장 와닿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고 어떤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경해서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우리아빠는 제일 위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을 친근히 부르는 말이라는 표현이 딱 맞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다른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고 잔소리도 많고 고지식하다. 그만큼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리아빠가 좋다. 아마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딸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정말 희생적으로 딸을 사랑하는 우리아빠를 보면 내가 우리아빠에게 주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마음을 울컥하게하고 온몸에 소름을 돋게하는 것 같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며 나중에 커서 아빠랑 결혼하겠노라고 외치던 사랑스러운 딸이 크면서,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쌀쌀맞아지는 모습이 얼마나 낯설었으며 서운하고 속상했을까…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짜증과 신경질을 마구 퍼부었는데 그때 마다 우리 아빠의 얼굴에 근심이 쌓이고 걱정이 쌓이면서 주름이 만들어진 것 같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께 꾸중을 들으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딸이 이제는 아빠를 이긴다. 이기고 아빠의, 아버지의 가슴에 눈물을 낸다.
요즘 아버지들, 아저씨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우리사회에 모습을 보며 딸들이 사랑이 작아졌구나…하는 마음을 함께 느낀다. 앞으로라도, 오늘부터라도 내가 우리아빠의 가슴에 눈물을내고 상처를 준 만큼, 우리아빠의 얼굴에 주름을 그려넣은 만큼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우리아빠가, 우리사회의 아저씨들이 다시 예전처럼 힘을내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아빠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아빠 사랑해요
■ 산문 고등부 장려작 - 인창고등학교 2학년 박가희 (작품명 : 아버지의 뒷모습)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싫어한다. 앞모습은 웃고 있고 힘찬 표정을 지을수 있다지만 뒷모습은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의 피로를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웃고 있는 모습을 봐도 처져있는 어깨를 보면 묘한 감정이 생기면서 마음이 아파온다. 그 아픔이 제일 큰 사람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버지라는 호칭 자체에서도 나는 무거움이 느껴진다. 자유롭고 걱정없이 살던 한 남자의 삶이 결혼을 함으로써 묶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가 생기기 시작하면 아버지라는 무게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크나 큰 무게를 갖는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이며 자신이 힘들어하면 걱정해할까봐 힘든 표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그런 사랑이다. 오히려 그런 마음 때문에 무뚝뚝한 아버지로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매우 무뚝뚝하신 분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아버지의 앞에서는 무뚝뚝한 딸이었다. 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아버지는 밤에 들어오셨기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TV만 보았다. 그리고 주말에는 잠을 오래 주무시기에 대화의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나와 아버지의 어색한 사이가 풀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 1학년 생활의 반년정도 되었을 때이다. 고등학생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단계이다. 그렇기에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실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중학생때는 상위권이었던 내 성적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심하게 떨어졌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아싿.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면서 어머니는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고 결국 면담을 하게 되었다.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였기 때문에 옆에는 아버지께서 컴퓨터를 하고 계셨다. 솔직히 혼나고 있을때 나의 심신은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은 잘 들어오지 않았고 제발 아버지께서 이 대화를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하시던 일을 계속 하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화가나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관심도 없어? 다른 집은 아버지가 조언도 해주고 격려도 해 준다고 하는데 왜 아무말도 없어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서 나는 울음이 터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워서 이기도 했지만 죄송한 마음 때문에 먼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보다 빨리 학교를 간다며 나왔다. 하지만 마음은 찝찝하였다.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왔을때 내 책상에는 편지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편지봉투를 보시며 어릴적 얘기를 해주셨다. 내가 태어난 뒤 아버지는 나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으셨다고 온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편지에는 나를 사랑한다는 얘기와 함께 등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며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내려오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올라가는 길은 계속 있을 거라고, 단지 사람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를 뿐이라며 아버지는 우리딸을 믿는 다는 글이어싿. 나는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편지를 썼다는 것과 이렇게 멋진 조언을 해주셨다는 것에 감동 받아 눈물이 흘렸다. 아버지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싿. 그리고 무뚝뚝한 딸은 그제서야 자신의 아버지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뒷보습을 보는 순간 나도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못된 딸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드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밤 아버지를 꼭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였다. 가족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냥 마음으로 통한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든다. 힘드신 아버지의 두 손을 나도 이제 꼭 잡고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든든하며 따뜻한 손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마음과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 생각한다.
■ 산문 초등부 최우수작 - 동구초등학교 6학년 손수빈 (작품명 : 밥짓는 아버지)
솔~솔~맛있는 냄새가 언니와 나의 공부방까지 풍겨 들어온다.
“우와! 이게 무슨 냄새야? 산해진미 안 부러울 냄새네?”
입맛이 까다로운 언니가 방실 방실 웃으며, 읽던 책을 내려놓고, 부엌쪽으로 다가갔다. 나도, 그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얼른 부엌으로 냉큼 달려갔다. 그 곳에는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하시고 오신 아버지께서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붙잡곤,
“아버지, 아버지, 이게 무슨 냄새에요? 냄세가 예술이에요~! 히힛”
말괄량이 내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내 볼을 가볍게 당기시며 웃으셨다. 드디어, 저녁이 완성되고, 주무시던 어머니께서 발딱 일어나시더니, 우와~하시며 감탄을 그치지 못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미소를 입 안에 머금으시며, 어서 먹어보라고 손짓하셨다. 오늘 밥상에 놓여 있는 저녁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수저를 들으시며, 먼저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서 드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햐~ 역시 이 맛이야! 역시 우리 남편 요리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내가 일본에 갔을 때, 당신 계란찜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라. 일본 계란찜은 물컹물컹한 게 맛이 하나도 없더라?”
일본에 갔다왔었던 언니와 나는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맛있나며 벙글벙글 웃으셨다. 엄마는 당연하다며, 연신 감탄하셨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새벽 5시에 회사에 가셔서, 다음날 아침 8시 15분에 집에 들어오신다. 이렇게 힘이 드시면서도 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가족을 위하여 힘쓰신다. 엄마를 위해 엄마가 다니시는 회사에 차를 태워 대려다주시고, 언니와 나를 위해 학원에 대려다 주시기도 하고, 언니와 나를 돌봐주시고, 잘 놀아주신다. 아버지께서도 바쁘신데, 이렇게 가족을 위해 힘쓰시는 모습을 보면, 조금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행복해보인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게 ‘아버지’하면 어떤 게 떠오르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천사, 가족의 보디가드, 키다리 아저씨라고. 왜냐하면 항상 가족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정말로 크게 느낀 적이 있다. 그 때는 바야흐로 2년전 으로 언니가 사소한 일로 남자아이들과 싸웠는데, 그 때 아빠께서 그 남자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혼을 냈던 기억이 있다. 남들이 들으면, 너무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는 것 아니냐며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약간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께서 그렇게 언니와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었다는 그런 따스한 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 어느 위인들보다도 더 존경한다. 그리고, 또 언제 아버지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냐면, 바로 나의 취미에 적극적으로 밀어주셨을 때 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요리하기, 책읽기, 그림그리기, 박스로 생활용품만들기가 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시며, 요리도 가르쳐주시고, 우리가 어렸을 적 부터 품 안에 안고는, 책도 읽어주셨다. 그리고,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것이 종을 것인지 일러주시기도 하시고, 박스로 내가 무언가를 만들때, 어려운 과정이 있으면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나의 재능에 더 힘써주시는 아버지가 너무 감사했다. 나도 나중에 크면, 자식에게 그렇게 힘써주고, 가정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라는 분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훌륭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나는 설거지도 해드리고, 빨래도 해드리 겠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내게 산소같은 존재이시다. 즉, ‘내게 꼭 필요하신 분’이시다. 나는 몇번이고 아버지께 이런 말을 드리고 싶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 산문 초등부 우수작 - 부양초등학교 3학년 백호렬 (작품명 : 아버지는 천하장사)
가족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엔 가족은 사랑의 주머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둘도없는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 가족의 사랑의 주머니 중에서 최고인 아버지! 난 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최고 인것 같은 아버지 말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필요한 것을 아끔 없이 주신다. 자녀들도 부모님의 사랑 안에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날수 있다. 그렇게 키워 주시는 아버지는 나에게 이로움만 주는 황금닭 같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들이 늘 건강해진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들이 가족이라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용기와 기쁨과 행복 사랑으로 항상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너무나 최고 인것같다. 얼마전에 우리 아빠께서 심한 열감기가 났을때 심한 열이 나고 몸살이 났던적이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언제나 무쇠팔 천하장사 아빠가 아프실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빠가 아프 시다니…….
온 식구가 우울했다. 내 방에 웃고 있던 인형들도 시무룩해 보였다.
‘에이, 왜 병이 아빠한테 간 거야’ 아빠 몸 속에 있는 병균들을 싹 없애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 집에 가장이고 항상 소나무 처럼 우뚝 변함없이 아버지가 나에겐 큰 희망이다. 언제나 아프지 않고 무쇠팔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약한 곳이라곤 하나도 찾아 볼수 없는 무슨 일이든 번쩍 번쩍 용기있게 뒷걸음질 하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하는 멋진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 나는 하나 해 드릴수 있는 것은 힘이 더욱 솟아 나라고 팔다리 팍팍 주물러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 께서는 저번에 아프셨던 기운이 다시 힘차게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셨다. 이렇게 아버지는 늘 우리가족 옆에서 항상 웃으시며 힘차게 오늘도 열심히 천하장사의 힘을 길러 나갑니다. 저도 우리 아버지처럼 하나 밖에 없는 무쇠팔 천하장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단 하나뿐인 영원한 천하 장사 이시다. 그리고 다음에 천하장사 무쇠팔 아버지가 또 아프시더라도 우리 가족 힘의 사랑주머니를 꺼내어 먹고 나을수 있는 약이 되어야 겠다. 무쇠팔 천하장사 우리 아버지 불끈 불끈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 헤쳐 나가시고 폭풍우 비바람이 쳐도 지금처럼 꿋꿋이 지켜 주실거라 믿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항상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무쇠팔 천하장사의 힘을 이어 받아 어렵고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아버지 처럼 잘 이겨 나갈 수 있는 멋진 천하장사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 산문 초등부 장려작 - 구리초등학교 5학년 장유정 (작품명 : 우리 아빠)
우리 아빠도 내 친구들의 아빠처럼 평범하신 아빠다. 항상 감싸주시지도 않고 나에게 기쁜일은 함께 기뻐해주시고 내가 잘못하는 점이 있으면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고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도 해주신다. 하지만 우리가족만 알고 있는 아빠의 비밀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신사답고 멋지게 행동하시지만 집에 돌아오시면 180° 바뀌신다. 코딱지 파서 바닥에 흘리고 밥먹을 땐 입에다 다 묻히신다. 그리고 무척 까다로우시다. 특히 음식에…… 엄마가 소금을 조금만 적게 넣어도 “간이 안됐네…”라고 말씀하시고 많이 넣으면 “꼭 음식 못하는 사람이 짜게 음식을 해.”라고 말씀하신다. 또 예민하시다. 심지어는 아빠가 주무실 때 조금만 목소리를 높이면 깨어나신다. 그리고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시다. 예를들면 “식탁에 음식 흘린건 먹지마라. 밥먹을때 먼지내지마라. 바닥에 흘리지 마라.”등 음식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편할때도 있다. 또 우리 아빠는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하시는 것같이 행동하신다. 항상 내동생이랑만 놀아주시고 밥도 먹여주고 노래도 불러 주신다. 또 노래도 불러주신다. 그래서 나는 내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런 것 이라고 알면서도 샘이 날때가 많다. 이렇게 아빠의 빈틈도 있지만 나는 놀랄때도 있다. 이런경우이다. 우리 까칠한 아빠가 요즈음에는 유머감각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내동생은 아직 모르고 있는것 같지만 아빠가 드라마에 나오는 손창민 아저씨처럼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시는것 같다. 또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것이라고 주장하던 아빠가 요즈음은 부엌일도 많이도와주신다. 내가 제일 놀란건 이사할때 우리아빠가 작년에 다리뼈가 부러지셔서 무리하시면 아프시고 안돼는데 엄마보다 청소하시는걸 더 협조해주시고 짐푸는것도 열심히 협조해 주셔서 새삼 놀랐다. 예전에 항상 아빠는 남자는 여자에게 대접받아야하고 집안일에 손도 대지않아야 한다는 권위의식이 강했고 만약이러지 않을경우엔 남자의 권위는 떨어진다고 생각해하셨다. 하지만 나는 청소하시는 아빠를 보며 예전보다 지금이 아빠의 권위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우리엄마도 아빠와 결혼한 것에대해 절대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나도, 내 예쁜여동생도 지금의 아빠가 예전보다 더 편하고 좋다. 아빠에게 원하는 점이 있다면 지금보다 아빠가더 책임감있고 사랑을 더 잘 표현해주셨으면 좋겠다.
“아빠, 사랑해요!”
■ 산문 중등부 최우수작 - 교문중학교 2학년 윤희준 (작품명 : 나의 하늘 아버지)
아버지는 내게 하늘이다.
어머니에 대해서 글은 많이 써봤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글을 쓰려니 어머니와 다른 느낌을 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우리 아버지 역시 가족의 행복과 부양을 위해 항상 애쓰신다.
아버지의 나이도 올해로 50이다. 보통 친구들의 아버지들 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결혼도 늦으셨고 맞이인 나도 늦게 낳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고 가끔씩 엄하시고, 우리에게 빈틈없는 모습만 보여주셔서 그런지 나는 아버지가 늘 강한줄 만 알고 있었다. 어떤 생각, 어떤 일을 하는 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서글서글한 성격이시라 남이 부탁을 해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 주시고, 내 눈에 아버지가 대단한 존재로 느껴졌고 한없이 크고 커다란 존재로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는 가끔 엄하시긴 해도, 나에게는 모든 부탁을 들어줄 만큼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와는 보통 대화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아버지랑 대화도 잘 하고 고민거리도 쉽게 터 놓는 편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내 눈에 아버지가 점점 추슬러져 비치는 것이…
요새 아버지가 회사에서 많은 업무와, 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 보이시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다.
난 그런 것도 잘 모르고 아직 어린아이처럼 투정과 짜증만 내고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투정부리기 일쑤였다. 이러는 내 자신이 가끔 밉기도 하였다.
지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어깨 한번 제대로 주물러 드리지 못한 것 같아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커다랗고 커 보이던 등 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는지 작아 보인다. 지금도 한숨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죄송스럽기만 하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 저녁에는 회사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안마를 해드려야지.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까지 잘 해오셨고, 앞으로도 잘 해 나갈 꺼 라고 나는 믿는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식구를 위해 사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아버지 못지 않게 가족을 우선시 할 것이며, 지금은 학생의 본분을 지켜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아버지는 나에겐 어린시절이나 지금이나 하늘이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생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주 큰 힘이 되어 주는 파란 하늘! 그래서 늘 함께 해야하는 소중한 하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하늘일지 몰라도 내겐 매일 사랑으로 생활에 힘의 근원이 되어주는 커다란 공간인 하늘이다.
■ 산문 고등부 최우수작 - 토평고등학교 2학년 김슬기 (작품명 : 아버지)
나는 처음에 ‘아버지’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으로 써볼까도 생각했었지만, 구리시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참가한 만큼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아버지에 대해 쓰겠다.
나는 솔직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셨다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사실, 우리집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적이 별로없다.
아버지는 처음에 내겐 뜬구름처럼 다가왔다. 어렸을 때 부터 이런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아버지는 내 삶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의식속에 잠시 스쳐가는 존재였다.
엄마는 이런 내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리셨고 나는 엄마의 보살핌속에 자라났다. 중학생이 된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자 내 상황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마에게 대들며 물어보았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 이야기는 꺼리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게 오랫동안 해주지 못한 말들을 해주시기 시작하였다.
그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엄마의 힘들었던 그동안에 나날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진짜로 아버지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나는 앨범을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였다. 그리고 만나지 않던 친가쪽 친척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생각할때면 어렸을적에 난감한 일들이 떠오른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가정환경조사서와 등본을 걷는데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가장 먼저 있는 반면, 나는 엄마의 이름이 맨 먼저 있어 내기가 챙피했었던 경험도 있었고, 친구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할때면 나도 모르게 그 속에서 움츠러 들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친구들이 내가 아버지가 없는 상황을 알까봐 항상 노심초사 해야했다.
그런 생각의 끝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다. ‘아버지가 있었으면’하는 생각도 항상 들었고, 아버지가 없는 나마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목포의 한 산소에 갔는데, 여름방학 때 였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날씨가 무더워 짜증을 냈던일이 생각이 난다. 그 때만 생각하면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그리고 나의 철없던 행동을 후회한다. 그 이후론 아버지의 산소에 가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곳이 어디든 아버지는 나와 함게 하실거라고 믿는다.
요즘, 한창 대드는 동생을 볼때면 나는 조영히 방에 들어가 아버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엄마도 요즘 일이 바쁘셔서 동생과 나에게 신경을 잘쓰지 못하신다. 남들과 다르게 아버지가 안계시다보니, 나는 조금 철이 일찍들었다. 그래서 나는 때론 동생에게 아버지의 역할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4살, 동생은 돌도 지나지 않는 나이였지만, 동생도 나처럼 아버지를 많이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 남매는 그렇게 아버지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내게 사랑과 천국의 존재, 그리고 한없이 넓은 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이제 나도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의 끝에서서 아버지를 돌아볼 수 있는 나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의 아버지는 살아계시지 않아도 불러볼 수 없어도… 내게는 한없이 소중한 분이시다. 사실, 아버지란 주제를 받는 친구들은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글 속에 담아내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래도 나의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19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의 인생을 보람차게, 후회없이 살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든든한 후원자, 내 아버지가 나를 응원해 주시기 때문이다.
■ 산문 고등부 우수작 - 토평고등학교 1학년 김보라 (작품명 :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가지 뜻이 나온다. 첫번째는 남자인 어버이 즉 부친이라는 말이고 두번째는 자녀를 둔 남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일컫는 말. 마지막 세번째는 삼위일체에서 제일 위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을 친근히 부르는 말이라는 것. 나는 이 세가지 뜻 중에서 마지막 세번째 뜻이 가장 와닿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고 어떤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경해서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우리아빠는 제일 위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을 친근히 부르는 말이라는 표현이 딱 맞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다른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고 잔소리도 많고 고지식하다. 그만큼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리아빠가 좋다. 아마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딸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정말 희생적으로 딸을 사랑하는 우리아빠를 보면 내가 우리아빠에게 주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마음을 울컥하게하고 온몸에 소름을 돋게하는 것 같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며 나중에 커서 아빠랑 결혼하겠노라고 외치던 사랑스러운 딸이 크면서,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쌀쌀맞아지는 모습이 얼마나 낯설었으며 서운하고 속상했을까…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짜증과 신경질을 마구 퍼부었는데 그때 마다 우리 아빠의 얼굴에 근심이 쌓이고 걱정이 쌓이면서 주름이 만들어진 것 같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께 꾸중을 들으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딸이 이제는 아빠를 이긴다. 이기고 아빠의, 아버지의 가슴에 눈물을 낸다.
요즘 아버지들, 아저씨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우리사회에 모습을 보며 딸들이 사랑이 작아졌구나…하는 마음을 함께 느낀다. 앞으로라도, 오늘부터라도 내가 우리아빠의 가슴에 눈물을내고 상처를 준 만큼, 우리아빠의 얼굴에 주름을 그려넣은 만큼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우리아빠가, 우리사회의 아저씨들이 다시 예전처럼 힘을내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아빠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아빠 사랑해요
■ 산문 고등부 장려작 - 인창고등학교 2학년 박가희 (작품명 : 아버지의 뒷모습)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싫어한다. 앞모습은 웃고 있고 힘찬 표정을 지을수 있다지만 뒷모습은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의 피로를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웃고 있는 모습을 봐도 처져있는 어깨를 보면 묘한 감정이 생기면서 마음이 아파온다. 그 아픔이 제일 큰 사람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버지라는 호칭 자체에서도 나는 무거움이 느껴진다. 자유롭고 걱정없이 살던 한 남자의 삶이 결혼을 함으로써 묶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가 생기기 시작하면 아버지라는 무게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크나 큰 무게를 갖는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이며 자신이 힘들어하면 걱정해할까봐 힘든 표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그런 사랑이다. 오히려 그런 마음 때문에 무뚝뚝한 아버지로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매우 무뚝뚝하신 분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아버지의 앞에서는 무뚝뚝한 딸이었다. 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아버지는 밤에 들어오셨기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TV만 보았다. 그리고 주말에는 잠을 오래 주무시기에 대화의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나와 아버지의 어색한 사이가 풀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 1학년 생활의 반년정도 되었을 때이다. 고등학생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단계이다. 그렇기에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실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중학생때는 상위권이었던 내 성적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심하게 떨어졌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아싿.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면서 어머니는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고 결국 면담을 하게 되었다.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였기 때문에 옆에는 아버지께서 컴퓨터를 하고 계셨다. 솔직히 혼나고 있을때 나의 심신은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은 잘 들어오지 않았고 제발 아버지께서 이 대화를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하시던 일을 계속 하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화가나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관심도 없어? 다른 집은 아버지가 조언도 해주고 격려도 해 준다고 하는데 왜 아무말도 없어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서 나는 울음이 터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워서 이기도 했지만 죄송한 마음 때문에 먼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보다 빨리 학교를 간다며 나왔다. 하지만 마음은 찝찝하였다.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왔을때 내 책상에는 편지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편지봉투를 보시며 어릴적 얘기를 해주셨다. 내가 태어난 뒤 아버지는 나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으셨다고 온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편지에는 나를 사랑한다는 얘기와 함께 등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며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내려오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올라가는 길은 계속 있을 거라고, 단지 사람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를 뿐이라며 아버지는 우리딸을 믿는 다는 글이어싿. 나는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편지를 썼다는 것과 이렇게 멋진 조언을 해주셨다는 것에 감동 받아 눈물이 흘렸다. 아버지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싿. 그리고 무뚝뚝한 딸은 그제서야 자신의 아버지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뒷보습을 보는 순간 나도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못된 딸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드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밤 아버지를 꼭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였다. 가족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냥 마음으로 통한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든다. 힘드신 아버지의 두 손을 나도 이제 꼭 잡고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든든하며 따뜻한 손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마음과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 생각한다.